Fiction
- 2018년 9월 9일
- 3분 분량
w. 물음표
"그 작전 나가지 마."
평소와 다름없이 우선순위를 따져 내려온 작전 지원서에 수락을 써 올렸다. 잠시 후 본부에서 확인차 직인이 찍힌 서류 대신 기광이 내려왔다. 그것도 작전에 나간다는 나를 말리기 위해.
충동이 반쯤 섞인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늘 지으면서도, 그 속내를 직접 드러낸 적 없었던 기광이었다. 분명 이번 계획서에는 거창한 내용이 없었는데. 오히려 이전의 것들보다 더 가벼우면 가벼웠지. 갸웃거리는 고개를 예상했다는 듯 기광은 얕게 한숨을 내쉰다.
"감이 안 좋아. 찝찝해."
"작전이, 아니면 내가?"
뭘 물어. 시니컬하게 나를 아래위로 훑어 내리는 눈길에 웃음이 터진다. 기광은 본부 소속이라는 이유로 작전팀에 내려오면 긴장 어린 시선을 받곤 했다. 그래서 작전팀 사무실을 벗어나 계단으로 반 층 내려오면 있는,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비상통로는 우리의 만남 장소이 자
...으음,
밀회의 공간이었다.
자연스레 끌어안은 허리. 정갈하게 잠긴 수트 마이 안으로 밀어 넣은 손은 부드럽게 얇은 셔츠 속 굴곡을 어루만진다. 이렇다니까. 안 보면 참겠는데, 보면 만지고 싶잖아. 입을 맞추려 코끝을 마주 대고 입술을 가까이 가져갔음에도 감기지 않는 두 눈동자. 욕구보다 불만을 또렷이 담고 바라보는 모습에 이번엔 내가 한숨을 내쉰다.
"이기광."
"왜."
"내가 너한테 뭐라고 그랬어."
"...그거 존나 오글거리는데 안 하면 안 될까."
콧잔등부터 눈꼬리까지 순식간에 일그러지는 모습을 보다 피식거리며 짧게 입을 맞춘다. 이 말이 그렇게나 진저리 날까. 그렇다면 해 줘야지. 피할 수 없게 얄쌍한 턱을 손으로 단단히 쥐어낸다. 손가락이 뺨을 파고들어 옴폭해진 볼. 잡힌 꼴과 이어질 반응이 우스워 미리 입꼬리를 길게 끌어올린다.
"나만큼 너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없을걸."
"윽."
"내가 지킬게. 너든, 나든."
고백했을 때 이 멘트 치고 뒤통수를 한 대 맞았던 것 같은데. 키득대니 곧장 주먹이 날아온다. 얻어맞은 배를 끌어안고 여전히 끅끅, 웃어대니 질펀한 욕지거리가 귀에 꽂힌다. 미친 새끼가 진짜. 불만스레 움찔거리는 입술에서 무언가 더 쏟아내기 전에 고개를 들어 미리 틀어막는다. 둔탁하게 입술 새를 가르고 예고 없이 살덩이를 밀어 넣는 건, 지극히 이기광 취향에 맞춘 행위라. 금세 조용해진 복도에 두 입술이 만드는 질척한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나 너 만나러 와야 돼."
-
"A 팀, 타겟 발견. 타겟 올라갑니다."
이번 작전은 정보가 흘러들어온 조직 간 대규모 마약 거래를 현장에서 덮치는 일이었다. 우리나라 조직과 더불어 홍콩, 러시아 자본까지 뒤섞여 꽤 큰 판이었기에 세밀한 설계가 이루어졌다. 거래에 참여하는 인원은 가장 중심이 되는 극소수, 그러나 그만큼 주변에 잔챙이들이 존나게 깔려 있다는 말이겠지. 뭐 빠지게 뒤져서 겨우 안전지대를 찾았다. 우리 쪽도 인원이 많아지면 들통나기 쉬워 현장에 직접 나가는 건 소수 인원으로 정해졌다. 주요 팀원들은 저격이 이루어질 건물 1층, 그리고 반경 100m 내 곳곳에 배치되었고 나머지 지원 인력들은 3분 내에 이 건물을 포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타겟은 계속 국정원의 신경을 건드렸던 H 조직의 수뇌부 중 하나.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조준경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모습을 드러내는 짜증 나는 인간. 늘 생포를 외치던 위쪽도 이번엔 저격을 허락했다. 하긴, 한국에서 저렇게 큰 판이 벌어진다는데 언론에서 누구 하나 냄새 맡고 덤벼들면 마구잡이로 써 내려가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미리 빠져나갈 구멍 만들어 놓겠다는 거지. 실패하면 적어도 그 새끼는 죽였다,라는 변명은 할 수 있을 테니.
"B팀, 접근합니다."
"준비됐습니다."
A팀 지휘, B팀 무장 후 접근 중. B팀의 위치를 확인하고선 저격을 준비했다. 곧 비가 쏟아질 것처럼 어두운 하늘. 몸을 숨기기에 딱 좋은 날이라 일컫는 날씨. 만족스러워 길게 미소 지었다.
앞으로 3분. 명령이 떨어지면 방아쇠를 당긴다.
"신호 주세요."
잠시 숨을 참았다. 하나의 감각이 막히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 호흡을 멈추면 속에서 소리가 울린다. 온 세상 소리가 극대화되는 느낌. 모든 것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면 부드러운 맥박만이 들려와야만 하는데,
옆에 내려놓았던 베레타를 움켜쥐고 일어나 뒤를 돌았다. 아무도 없는 옥상. 그러나 명백한 발소리였다.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듯한. 아무리 소음기를 장착한 총이라 한들 여기서 발포한다면 분명 소란이 발생할 터. 심지어 민간인인지, 우리 팀인지, 저쪽 새낀지 알 수도 없어서 함부로 행동하지도 못 한다. 씨발, 이런 건 밑에서 끊어줘야지!! 이를 으득 갈아낸다. 그래, 일단 어떤 새낀지 면상이나 보자.
겁도 없이 벌컥 열린 문. 그 새로 나온 건.
"...이기광?"
"안녕."
어울리지 않게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이기광이었다. 허탈해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얘가 올라오면 올라온다고... 근데 언제부터 무전이 안 왔더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두준아, 미안."
"...어?"
본능이 말했다. 지금 느끼고 있는 건 반가움이 아니라 기시감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그랬잖아"
"너 지금 뭐라는 거야."
"나가지 말라고."
서늘한 총구가 나를 향했다. 네게 꼭 맞는 리볼버. 작은 손을 위해 개조까지. 짧은 순간, 예측하지 못했던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본능적으로 방아쇠에 걸린 검지는 긴장을 놓지 않았으나,
"너..."
"뭐든 니가 생각하는 게 맞을걸."
나는 네 앞에서 그걸 당길 수가 없었다. 너는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망설였고, 너는 망설이지 않았다. 전혀.
"잘 가, 윤두준."
내일 볼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네는 것마저도.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정확하게 꿰뚫는 탄환. 가슴을 움켜쥔 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서다 허공으로 밀려난다. 보통 영화에선 인사를 상호 교환할 시간이라도 주지 않나. 아니 적어도 욕 한 마디 할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냐. 너는, 씨발. 너는 다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웃냐, 씨발아.
-
"처리 끝났습니다."
두 사람이 떠난 자리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작전은 실패했다.
단 한 사람에 의해 전원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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