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lling you
- 2018년 9월 9일
- 2분 분량
[형광/섭광]
W.김괭킨
‘우리 헤어지자.’
어, 응.
처음 기광의 말을 듣고서는 역시 우리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뒤돌아 걸어가는 기광이가 눈물을 흘려도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친구에게 헤어졌다고 이야기를 해도 그리움은커녕 홀가분했다.
기광이의 빈자리를 느낀 것은 술을 마시고서였다. 술을 마시면 본심이 나온다고 했었나. 그래봤자 이미 매우 늦었지만. 헤어지고 정확하게 일주일 후였다. 내가 이렇게 미련한 사람이었나. 친구랑 함께 마시는 술이 이렇게 달달하면서도 씁쓸했나.
“용준형! 기광이 안 불러도 돼? 너 많이 취했어.”
“아 나 걔랑 헤어졌다고 말 안 했어?”
“뭐? 너랑 걔가 그런 사이였어?”
아, 말실수.
맞아, 저 애에겐 기광이랑 그냥 친한 사이라고 말했었지. 그지. 많이 당황한 눈치다. 당황함과, 측은함 등 온갖 감정이 섞인 눈빛. 어색한 듯이 웃으며 그냥 지나가려 한다. 말해주고 싶지 않았는데. 기광이가 그렇게 싫어하던 것이 사람들에게 연애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도 네 생각이 나는 거면 나는 아직 너를 사랑하는 걸까?
“어쩐지 너무 친하더라.”
분위기는 쉽게 어색해진다. 지금이 딱 그래. 술병이 늘어날수록 네 생각도 늘어났다. 잘 헤어진 거라고 믿고 있었는데. 기광이의 입장에선 잘 헤어진 것이 맞긴 하다. 심장이 쿵쿵쿵. 기광일 잡아야 할까? 보내 주는 것이 맞는 건가? 난 왜 이렇게 이기적이지?
친구가 말리는 것을 무시하고 휴대폰을 들었다. 이러는 거 진짜 이기적인데. 술 먹고 정신 차리는 거 진짜 나쁜 놈인 건데.
이건 아니라고 계속 생각했지만 내 몸은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심장이 쿵쿵쿵 뛰며 긴장됐다. 문자? 전화? 아니면 미리보기라도 보게 카톡? 나 차단하지 않았을까? 오랜만에 목소리라도 듣게 전화를 걸려 했지만.
“고객님의 전화기가 지금 꺼져있어….”
꺼져있다. 역시 전화하는 건 조금 아니지? 애써 마음을 가다듬었지만 손이 덜덜 떨리며 후회됐다. 아, 그냥 하지 말걸.
“너도 참 미쳤어. 이기광한테 전화를 거냐.”
친구 말이 다 맞다. 나는 어리석고 쓰레기일 뿐이야. 내가 진짜 미친놈이지.
-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차라리 깨졌으면. 어제의 기억은 날 아주 괴롭게 만들었다. 분명 내가 잘못한 것이 맞는데 왜 괴로운 건지. 괜히 서글퍼져서 눈에 눈물이 고였다. 분명 술은 어제 먹었는데 왜 주정은 지금 부리는 것 같지. 배터리가 다 닳아서 꺼진 휴대폰을 다시 킬 용기가 없었다.
한참을 누워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다가 결심하고 몸을 일으켰다. 일단은 난리 난 속을 달래기 위해 라면이라도 끓이려 했다. 울렁거리는 속이 당장이라도 올라올 것만 같았다.
라면을 끓이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휴대폰 전원을 켜니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다행인 건가? 한편으로 기광이에게서 연락이 오기를 바랐던 내가 한심했다.
인스타에 올라오는 기광이의 사진을 보며 추억을 되새겼다.
“어, 양요섭이다.”
기광이의 인스타에 올라온 양요섭과 기광이의 사진에 정신이 멍해졌다. 둘이 사귀는 건가? 전 애인의 인스타를 들어가서 찾아보는 것이 한심했다. 비굴한 전 애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왜 나는 이러고 있는 거지, 구경을 하느라 팅팅 불어버린 라면을 먹자 텁텁했다. 짜고, 국물도 다 없어져 버려서 해장도 잘 되지 않았다. 결국 라면은 전부 쓰레기통으로 들어갔고, 해장도 못 했다.
“술이나 먹을까.”
다시 떠오르는 기광가의 추억에 다시 술이 고파졌다.
-
잘 지내나봐. 난 아직 널 기다리고 있는데. 아니, 사실 기다릴 자격도 없지만 그저 너를 또 보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문자를 보내봐.
“진짜 미쳤다.”
술을 먹다가 정신 차려 보니 기광이에게 장편의 문자를 보낸 뒤였다. 나는 생각이 있는 놈일까? 당황해서 휴대폰의 전원을 끄려고 하는 순간 기광이에게 답장이 왔다.
[나, 사귀는 사람 있어. 연락 하지마.]
기광이의 답장에 하염없이 울었다. 내가 나쁜 놈이었다. 나쁜 놈. 있을 때 잘해줘야지 떠나고 잘해주면 뭐 해. 가슴에 스크래치만 남기고 기광일 마음속에 묻었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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