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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Luck

  • 2018년 9월 9일
  • 10분 분량


w.꼼





며칠 전부터 회의를 하자고 단톡방을 징그럽게도 울려대더니 어찌 된 게 제시간에 나타나는 놈이 하나도 없다. 언제나 제시간에 오지 않을 놈들인 걸 알면서도 늘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와버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습관 같은 것이다. 어쩌면 오랜만에 네 얼굴을 볼 생각에 들떠 서둘렀을지도 모르지. 무슨 중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사무실도 아닌 카페로, 심지어 매니저도 없이 모이자고 한 건지 모르겠지만 절대 늦지 말라 오늘 아침까지도 단톡방에 엄포를 놓은 용준형은 물론, 멤버들 모두 약속시간이 지나도록 여전히 소식이 없다.

진동벨과 맞바꾼 커피를 들고 이층으로 올랐다. 빛이 들지 않는 창가 자리를 골라 앉아, 빨대도 던져버리고 손에 쥔 커피를 그대로 들이켜 마셨다. 라디오를 시작하면서 커피를 달고 살았더니 내 기준치 만큼의 카페인이 들어오지 않으면 몸이 하루를 버티질 못했다. 스스로 커피를 줄여야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눈앞에 커피만 보이면 일단 때려 붓고 마는 것이다. 단숨에 비워버린 잔을 보며 한 잔을 더 시킬까 하다가 오늘 라디오 전까지도 마실 카페인의 양을 생각해서 말기로 한다. 대신 던져놓았던 빨대로 휘저으며 커피를 모두 마셔버린 잔에서 적당한 크기의 얼음을 골랐다.


입안에 얼음을 넣고 굴리며 의미 없이 하늘 위로 느리게 움직이는 구름을 본다. 하늘은 보고 있으면 난 늘 네가 생각이 난다. 정확하게는 하늘을 보는 너의 뒷모습이. 문득 내려다 본 카페 입구로 들어서는 차 한 대가 보였다. 아는 차다. 안정되게 주차된 차에서 내리는 윤두준과 이기광이 보인다. 그럴 줄 알았다. 오늘도 두 사람이 함께였다. 두 사람의 집이 가까워 그렇다고 했지만, 집은 두 사람만 가까운 것이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카페로 들어오는 순간까지 마주 보는 얼굴들이 웃고 있다. 이기광의 어깨 위로 걸쳐진 팔은, 나를 발견하고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해오면서도 내려올 줄 모른다. 공기가 갑갑해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시원하게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두 사람의 등장부터 나는 핸드폰으로 게임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함께 뛰는 축구 팀원의 경조사라든지, 바쁜 스케줄을 쪼개 둘이서 먹었다던,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이름의 음식이 또 먹고 싶다는 두 사람의 대화는 도통 내가 끼어들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예 신경을 끌 수도 없어서 게임에 집중이 되지도 않는다.


휴대폰의 작은 화면 너머, 시선에 걸리는 행동들에 자꾸만 눈이 간다. 윤두준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후부터 줄곧 기광을 챙겼다. 비닐에 싸여있는 쿠키를 모두 뜯어 기광의 앞에 놓아두는 것을 시작으로, 본인의 음료를 먹어보라며 빨대를 입에 대주더니, 맛있다는 말에 자신의 음료까지 이기광의 앞으로 밀어 주기까지 했다. 조금 유난스럽기는 하지만 원래가 저런 놈이다. 태생이 남 챙겨주는 걸 좋아하고 배려하기 위해 태어난 놈인데, 유독 기광에게 심했지만 그건 기광의 캐릭터가 한몫을 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옆에 있으면 챙겨줘야 할 것 같고, 옆에 없어도 미리 챙겨 놔줘야 할 것 같은 이기광에게 예전에 나는 저것보다 더 했다. 하다 하다 다 큰 사내 녀석에게 세수와 양치질까지 시켜주던 나였는 걸 뭐. 구 남자친구가 되어버린 지금에야 의식적으로 자제할 뿐이지. 그러니 지금 이기광을 대하는 윤두준의 행동들은 두 사람의 캐릭터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마는 일상일 뿐인 것이다. 그런데,


'너 머리 제대로 안 말려서 뒷머리 꼬불거려, 그러니까 내가 말려준다고 했잖아.'

기광의 뒷머리를 손끝으로 비비며 말하는 윤두준은 어딘가 들떠 보였다. 무슨 비밀스러운 생각을 하는 건지, 웃음을 참으려는 입가가 씰룩거려 웃긴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저 눈은... .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은 눈을 알고 있다. 사실 윤두준의 경우는 숨길 생각도 못 한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은 숨길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이기광은?

윤두준의 시선을 따라가 보게 된 이기광은 제 머리를 만지는 윤두준의 손길을 받으며 가만히 웃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너네 둘이 그렇게 된 거구나. 이기광과 윤두준은 그렇게 되었구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 순간, 인간은 얼마나 비참해지는 기분이 되는가.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고작 지금에서 벗어나고자 선택한 나의 방법은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들을 더듬어 우리의 처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언제나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오는, 이기광과 양요섭의 처음을.




그때의 나는 데뷔가 유력한 상황이었지만 슬럼프였다. 지금은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여러 가지 복잡한 심경들로 노래 부르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가 않았던 시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느지막이 찾아온 사춘기였을 수도 있었겠다. 월 말 평가는 늘 상위권이었고, 회사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았던지라 데뷔 안정권이었음에도 매일 나는 이유를 알 수없이 답답했고,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스스로에게 자주 화가 났었다. 그런 스스로에게 지쳐 두준에게 가수의 꿈을 접을까 한다고 말하던 날. 그날 연습실에는 나와 윤두준, 그리고 우리와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는 이기광뿐이었다. 아직 아이들이 모이지 않은 이른 시간의 연습실은 조용했지만 이기광과는 어느 정도 거리도 있었고, 두 귀는 이어폰으로 막혀있었기 때문에 우리 이야기를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듣고 있다고 해도 이기광은 남의 이야기에 크게 관심을 두는 성격이 아니었다. 한 달에도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연습생이 다섯 손가락을 넘어가는 상황에서 내가 그만둔다는 건 저 이기광에게 큰 이슈도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에, 들었다 하더라도 사실 크게 상관이 없었다. 힐끔 본 이기광은 전신거울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시작이 되었던 그날 밤. 나는 연습이 끝난 후 편의점에 들러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샀다. 오른손에 봉지를 덜렁덜렁 들고 향한 곳은 집이 아닌 연습실 근처 아파트 놀이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어두운 밤. 텅 빈 그곳에서 홀로 그네를 차지하고 앉아 의미 없이 바닥의 모래를 차며, 고작 맥주 두 캔을 세 시간 동안 나눠 마셨다. 오래도록 바라왔던 꿈과 먼 훗날의 나의 미래, 그리고 당장의 내일. 흔들리는 그네에 앉아 많은 생각과 오랜 고민 끝에 연습생활을 접기로 결정한 뒤, 나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가벼워진 마음으로 짐을 챙기기 위해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이미 사무실 직원들도 모두 퇴근한 후였지만 연습실의 불은 밝았다. 연습실 문을 뚫고 나오는 노래는 크리스 브라운. 언제나 크리스 브라운의 노래를 듣는 녀석이 누군지 알고 있다. 아니, 노래 선곡이 아니더라도 나는 그 늦은 시간까지 연습하는 누군가를 알고 있었다. 언제나 남들보다 늦게까지 남아 그날의 연습량을 모두 끝내야 집으로 돌아간다던 연습벌레 이기광. 내가 연습생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그때까지도 이기광은 우리 회사에서 유일하게 데뷔가 확정이 된 인물이었다. 그리고 나는 확정은 아니더라도 데뷔 안정권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아마 별 탈이 없이 흘러간다면 이기광과 나는 한 그룹에 묶여 데뷔할 것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말도 제대로 해 본적 없었는데, 그 이유는 당연 이기광 때문이었다. 오래 연습한 기간이 무색하게도 나뿐만이 아니라 이기광과는 친하게 지내는 연습생이 없었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이기광을 싫어하는 건 아니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낯가림을 모르는 나조차도 이기광과는 친해지기가 어려웠다. 어쩌면 한 팀이 되어 부대끼며 살아갈지 모를 이기광과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순간 기분이 조금 이상해졌다.


'오늘도 열심히네.'


큰 음악소리에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거다. 그러나 나도 들어달라고 한 말은 아니었기에 그대로 춤추는 이기광의 뒤를 지나, 용준형과 함께 사용하는 라커의 문을 열었다.

챙길 짐이라고는 고작 티셔츠 몇 장과 트레이닝 바지 두 장. 평소 용준형이 탐내던 아대는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용준형의 각 맞춰 접혀 있던 티셔츠 위에 올려두고 로커의 문을 닫았다.


'그만두려고?'


운동화 끌리는 소리가 안 들린다 싶었는데, 어느새 뒤에 선 이기광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서 있었다. 내 기억에 이기광과 마주 보고 대화를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나는 전에 없던 이기광의 행동에 얼떨떨해서 그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잘난 얼굴이라고, 그때 생각했다. 이기광의 데뷔가 유력한 이유는 바로 얼굴이었다. 흔히 말하는 이 바닥 프리 패스상. 누구는 춤으로 각종 대회를 휩쓸고 다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해도, 이 잘난 얼굴 하나를 이길 수가 없는 곳이 이 바닥인 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었다.


'왜?'

'.. 재미가 없어서'


이기광에게 굳이 나의 복잡한 심경을 말해 줄 필요는 없었기에 나는 간단한 말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가만히 날 들여다보길래 할 말이 있나 싶어 기다려주었다. 비슷한 키였기에 마주 보는 시선이 편했다. 혹시 이기광도 내 아대를 탐내는 건가, 혼자 우스운 생각을 하던 중 와닿는 입술의 느낌이 생소했다. 순간 나는 내가 맥주 두 캔에 취해 헛것을 보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무려 이기광이 나에게 키스를 하다니. 잠시 닿았던 입술이 떨어지고, 다시 마주한 이기광의 눈동자에 멍청해진 나의 얼굴이 비쳤다. 지금 내 얼굴을 본다면 용준형이 배를 잡고 웃었을 거라고, 그 상황에서 든 생각은 고작 그런 것이었다.


'술 마셨나 보네.'


나는 또다시 얼떨떨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나와는 다르게 별다른 표정 없는 얼굴이 다가와 한 번 더 입술이 붙었다. 어설프게 혀가 들어오려 하길래 입술을 조금 벌려 주었는데, 이런 쪽으론 경험 없던 이기광은 무작정 혀를 밀어 넣은 후에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더 당황스러웠다. 어찌해야 하나 눈을 굴리다가 입안으로 들어온 말캉한 혀를 장난스레 살짝 깨물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 길래 나도 슬쩍 몸을 뒤로 뺐다. 한 번, 두 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지만 눈을 깜빡이는 어린 얼굴이 귀여웠다. 설마 또 하려나 싶었는데 정말로 또 다가오는 얼굴에 눈을 감아버렸다. 너와 나의 비슷한 키는 마주보기 편한 만큼, 키스하기에도 편하다고 생각했다. 어설프기만 했던 너와의 첫 키스는 미지근한 땀 냄새났다.



결국 그날 챙기지 못한 짐 때문에 나는 다음날도 연습실에 출근을 해야 했다.


'왔네?'


나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 이기광은 정수기에서 물을 한가득 퍼마시고 땀을 닦으며 연습실을 나갔다. 이기광은 수시로 사장님께 불려갔는데 그만큼 그가 우리 회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우스갯소리로 연습생들 사이에서는 같이 데뷔할 멤버도 이기광이 고르고 있다는 소문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도 같다.

이기광이 나간 연습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호기심 어린 눈빛들이 모여들었다.


'뭐야? 둘이 언제부터 친했어?'


가장 먼저 가까이 달라붙어 묻는 건 역시나 용준형. 고작 왔냐,라는 인사 한마디에도 친한 것이냐 호들갑을 떨 정도로 이기광은 인간관계가 엉망이긴 했다.


'연습들이나 해, 새끼들아.'

'양요섭, 이기광한테 간택당했네. 데뷔 확정인가 봐.'


무심하게 지나치는 등 뒤로 웃음 섞인 농담들이 들려왔다. 물론 그 말들엔 악의가 없기에 나도 따라 웃었다. 이기광에게 간택이라니. 나는 전 날의 키스가 생각났다. 어쩌면 그것은 간택이었나?


사무실에서 나오는 이기광을 기다려 손목을 잡아끌었다. 녀석은 왜 이러냐는 말 한마디 없이 순순히 따라오는데, 막상 이기광과 단둘이 이야기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한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다 들어간 곳이란 게 고작 화장실이다. 잡고 있던 손목을 놓고, 안쪽 칸막이들을 열어보는 사이 이기광은 태연하게 세면대에서 손을 닦았다. 화장실 모든 칸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후 손을 닦는 이기광 뒤에 서 있다가 수도꼭지가 잠기는 순간 말했다.


'어제 뭐였어?'

'너 재미없다길래.'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말하는 이기광이 너무 덤덤해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 지도 까먹을 뻔했다.


'나 재밌으라고 그랬다고?'

'재미없었어?'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연습생 생활로 학교를 잘 다니지 못한 이기광은 또래들과 어울릴 줄 모른다고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미친놈일 거라고 생각은 안 해봤는데. 재미가 없어 연습생을 그만둔다는 나의 말에, 재밌게 해주면 그만두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럭저럭 귀엽게 봐 줄 수도 있을 테지만, 그 재미를 입맞춤에서 찾는 건 문제가 있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우린 둘 다 남자인데?


'그럼 다시 한 번 해볼래? 이번엔 재밌을지도 모르잖아.'


아마 이기광은 전 날의 키스가 본인의 서투름 때문에 내가 재미가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이기광도 이기광이지만, 다가오는 얼굴에 또다시 눈을 감아버린 나 스스로에게 더 어이가 없어졌다. 그날은 전 날보다 조금 더 길게 입을 맞췄고, 혀도 제대로 움직였다. 엉거주춤하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이기광의 어깨를 잡아 슬쩍 당기니,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손으로 내 허리께를 잡아와 티셔츠가 젖어 옆구리가 축축했다. 너와의 두 번째 키스에서 나는 정말 재미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그 뒤로 나는 너와 키스하기 위해 매일 연습실로 출근했으니까.






'우리 회사 사칙에 보니 사내연애가 금지라던데.'


나를 바라보는 이기광의 눈이 깨끗하다. 그 안에는 더 이상 예전의 감정을 찾을 수가 없었다. 가볍게 던진 농담과 달리 마음은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고, 나는 조금 슬퍼졌다.


'눈치챘어?'

'모를 수가 없겠던데. 숨기고 싶으면 윤두준 얼굴 좀 어떻게 해봐. 네가 좋아 죽겠는 걸 숨기질 못하더라.'


이기광은 웃으며 집게손가락을 문질러 앞에 놓인 쿠키를 부쉈다. 전화 통화를 위해 자리를 비운 윤두준이 없는 곳에서 우리는 더 이상 말이 없었고, 나는 의미 없이 쿠키를 뭉개는 이기광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저 작고, 뭉툭한 손에 내 손가락을 끼워 넣고 너의 꿈을 지켜주겠노라 다짐했던 그 시절이 여전히 그립다. 나는 아직 네 손을 놓지 못했다. 손이 허전한 기분이 들어 핏줄이 돋을 만큼 세게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 그룹 안에서 두 명이나 만나는 건 너무 상도덕 없는 거 아니냐?'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농담을 던져보지만 가라앉은 기분은 다시 떠오를 줄 모른다.







이기광은 주변에 무심했다. 아마 어린 시절부터 시작한 오랜 연습생활이 녀석의 그런 성격을 만들어 냈을 지도 모른다. 같은 꿈을 가진 아이들이 모여 서로 힘을 주면서도 결국은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사람 마음이란 게 모두 같을 수는 없기에, 아낌없이 내 마음을 주어도 시기와 질투로 돌아 오기도 했고, 마음이 잘 맞아 함께 하기를 바랐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보이지 않는 일도 다반사였다. 그런 상황들이 어린 이기광을 무심하게 만들어 결국 연애 스타일 역시 무심해져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이기광이 나에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네가 나의 목소리를 사랑한다 말한 뒤로, 나도 내 노래를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처음 옷 하나 걸친 것 없이 살을 맞대던 날. 너는 말했다.

-나는 꼭 성공하고 싶어. 네 목소리가 필요해.

너와 깍지 낀 손에 힘을 주며 내가 가진 모든 걸 다해 너의 꿈을 지켜주겠노라 다짐했다. 나는 너를 위해 노래했다. 너의 꿈을 위해.

너는 입버릇처럼 항상 나에게 말했었다. 언제가 다가올 너와 나의 마지막, 그리고 우리 팀의 마지막. 너는 그 마지막이 늘 두렵다고 했었다. 그런 너에게 나 역시 입버릇이 되어 해준 말은, 내 모든 걸 다해 널 지켜주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나는 우리 둘에게 올 마지막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나는 네가 점점 더 좋아지기만 했고, 너는 내가 네 손을 놓지 않는 이상 날 밀어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너는 어느 날 나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전혀 그런 뉘앙스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기에 나는 준비도 없이 이별을 당했다.

많이 아팠다. 온몸에 열이 났고,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는 수십 번 너를 잡기 위해 매달렸는데, 너는 단 한 번의 여지도 주지 않았다. 사실 난 여전히 우리의 이별을 이해를 하지 못한다. 도대체 우린 왜 헤어진 걸까?







'먹으라고 까준 쿠키를 다 부셔놨네. 애도 아니고.'


타박하는 말과 달리 기광의 손에 묻은 쿠키의 부스러기를 닦아내는 윤두준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데, 물티슈로 닦느라 잡고 있던 손을 그대로 내려 테이블 아래로 맞잡은 두 손을 보니 한숨을 참을 수가 없다. 맙소사, 저렇게 조심성이 없어서야. 시선을 돌렸다. 창가로 이기광의 얼굴이 비친다. 보기 싫어 피한다는 게 겨우 이거다. 그런데 이기광 지금.. 다시 고개를 돌려, 여전히 마주 보는 얼굴로 또다시 내가 모르는 이야기 중인 두 사람을 보았다. 내가 그랬잖아,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눈이 있다고. 그런데 지금 이기광 눈은 있잖아..




전 소속사와 계약이 끝나 새로운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의외로 가장 불안해하던 건 윤두준이었다. 불안함이야 우리 모두 마찬가지였겠지만, 녀석은 우리보다 몇 배의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동갑이었지만 리더라는 이름이, 녀석에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 번도 본인에게 얻어진 짐으로 힘든 티를 낸 적 없이 흔들림 없던 듬직한 리더였기에, 방향을 못 잡고 위태로워 보이던 그 모습에 더 불안하고 초조해지던 건 우리였지. 그런데 윤두준이 언제부터 다시 굳건한 리더가 되었지? 이기광과는 언제부터 사귀는 사이가 된 걸까? 나는 우리의 처음을 다시 떠올려본다.


만약, 나보다 더 노래를 잘 부르는 연습생이 있었다면. 그날 넌, 나에게 키스를 했을까? 마주 보던 너의 두 눈이 사랑이었다고 착각한 건, 그 안에 비친 나의 모습을 보고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걸려온 전화로 윤두준이 자리를 비웠을 때, 내내 목구멍에 걸려있던 그 말을 뱉어냈다.


'윤두준을 정말로 사랑해?'


너는 가만히 날 본다. 깜빡. 느리게 눈을 감았다 뜨고, 고개까지 기울이며 본인에게 던져진 말의 뜻을 이해하려는 얼굴이 된다.


'날 사랑했어?'


한 번 더 깜빡, 하고 감았던 눈을 뜨며 제자리로 고개가 돌아오는 그 짧은 순간에, 우리의 추억들이, 내 마음들이, 까맣게 물들어 달아났다. 다시 한 번 더 이기광이 눈을 감았다 떴을 땐 그 긴 눈 속 옅은 눈동자가 나와 마주 보던 시선을 돌려 내 등 뒤로 향했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용준형과 손동운의 목소리로 그들의 등장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향해 웃어 주며 너는 내게 말했다.

'나는 너희 모두를 사랑해.'


차라리 날 사랑한 적 없다고 말하는 게 덜 비참할지도 모르겠다. 십 년간의 내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그러나, 이기광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노래를 할 수 있었을까? 최초의 혼란을 겪으며, 한없이 위태롭게 흔들리던 윤두준은 누가 잡아 줄 수 있었지?


이제 와 부질없는 이야기지만, 만약 그때. 위태롭게 흔들리던 게 윤두준이 아닌 나였다면. 그렇다면 혹시 지금 네가 잡은 손은 윤두준이 아닌 나였을까? 나는 너를, 오직 너의 꿈을 지켜주고자 힘들어할 수도 없었어. 나라고 어째서 그 시기가 불안하고 초조하지 않았겠어. 난 너를 위해 결정했고, 널 위해 행동했어. 내가 너를 위해 사는 동안 윤두준은 무얼 했지? 윤두준이 내가 날려버린 기회로 널 가졌다 생각하니, 코끝이 아리도록 억울하다.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너를 좋아하는구나.


사실 우리 모두는 은연중에 기광을 어린 동생으로 보는 면이 있었다. 나와 윤두준처럼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우리에게 기광은 챙겨주고 싶은 친구였다. 녀석과 동갑이어도, 동생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의지되기보다, 지켜주고 싶었다. 그랬던 이기광이었는데. 이기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이기광, 네가 바라는 행복이 이런 것이라면 이것 또한 내가 지켜줄게. 나는 다 괜찮아. 다만 뭘 해도 네가 행복하기를.




Good luck baby Good luck to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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