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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dnight

  • 2018년 9월 9일
  • 4분 분량

w.가락



1.


“잠이 안 올 때면 밤하늘의 별을 세어 봐.”


시선은 아득히 하늘을 향한 채 기광이 문득 입을 열었다.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기광을 바라보던 나는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어둠 위에 촘촘히 박혀 있는 부스러기들. 확실히 이곳은 우리가 살던 도시보다 별이 많이 보였다.


“별?”

“응, 별. 그러면 나는 금세 잠이 오더라.”

“그럼, 별이 안 보이는 날엔?”


“그땐….”


기광은 무어라 말을 했으나 목소리는 아득히 멀어져 들리지 않았다.




양요섭과 이기광,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2.


너와 보낸 마지막 계절은 유난히도 더웠다. 좀처럼 땀을 흘리지 않던 네 목덜미에서 땀 한 줄기가 주르륵 흘러내리던 순간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기온은 끝을 모르고 치솟았고, 낮 동안 잔뜩 달궈진 땅은 밤이 되어서도 식을 줄을 몰랐다. TV에서는 “역대급”, “최고”, “최악”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올여름 더위가 얼마나 끔찍한지에 대해 연신 보도했다.



“올여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무더웠던 그 어느 날, 기광은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내게 그렇게 말했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며 그의 옆에 앉자 그는 네모나게 잘라놓은 수박 하나를 포크로 찍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에 입을 크게 벌려 수박을 받아먹으니 기광이 흐뭇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왜? 더워서?”

“응, 인간적으로 이건 너무 더워.”


기광은 나에게 내밀었던 포크를 가져가 수박 하나를 입에 쏙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수박이 맛있는지 한 조각을 더 입에 넣으며 눈을 감고 만족스러운 소리를 내었다.


“음-. 이 수박 맛있다.”

“당연하지. 누가 사 온 건데.”


그 수박은 내가 전날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 사 온 것이었다. 표면을 두드려도 보고 꼭지와 줄무늬를 살피며 고심 끝에 고른 녀석이었는데, 기광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칭찬 한 번에 괜히 기분이 들떠 너스레를 떠니 기광은 그런 내가 웃겼는지 으하하 소리 내어 웃고는 “오구, 우리 요섭이 그래써요?”라며 놀리기 시작했다.


“아, 이기광, 하지 마.”

“네네, 그럴게요. 우리 요섭이, 화난 거 아니죠-?”


장난기 가득한 눈썹과 예쁘게 휘어진 눈, 살짝 올라간 광대와 선명한 입동굴.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그 순간이 싫지 않았다. 아니, 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박수까지 치며 해맑게 웃는 네 얼굴이 여전히 잔상처럼 남아 아른거린다.



기광의 장난은 내가 그를 간지럽혀 항복을 받아내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나는 화제를 돌리기 위해 의미 없이 켜져 있던 TV로 시선을 옮겼다. TV에서는 기상캐스터가 내일 날씨를 알려주려던 참이었다.


“내일도 39도까지 올라가네.”

“으윽, 대체 언제까지 이러려나….”


기광이 얼굴을 잔뜩 구기며 기지개를 켜곤 내 무릎을 베고 누웠다. 나는 그의 헝클어진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게, 빨리 이 여름이 끝났으면 좋겠다.”




3.


그때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됐다고, 모든 미래를 알게 된 지금 생각한다. 검은색 반팔티를 입고 아이스팩을 넣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던 너. 그리고 줄무늬 나시 티를 입고 젖은 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던 나. 매년 보던 그 익숙한 풍경을 다신 보지 못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나는 결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빨리 이 끔찍한 계절이 지나가길 바라는 대신 흘러가는 계절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이별은 우리를 찾아왔고, 그 계절은 가장 잔인한 형태로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나는 너의 말대로 영영 그 계절을 잊을 수 없게 되었다.




4.


살인적인 더위는 네가 떠난 이후로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몸속으로 침투한 바이러스를 죽이기 위해 열을 내는 몸처럼 계절이 너를 잊으라고 보채는 듯했다. 밤에도 기온은 30도에 육박했고,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 이어졌다. 내가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더위 때문이라고 나 자신을 속이며 매일 밤 억지로 잠을 청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때늦은 장마가 뜨거운 공기를 식히며, 마침내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기나긴 여름도 끝이 났다. 창문 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제법 선선해 계절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실감한 순간 가장 먼저 내게 들이닥쳤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나 혼자 흘러간다는 두려움.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며 동시에 시간의 흐름을 실감했다. 너의 시간은 그때에 멈춰 있는데, 내 시간은 자꾸만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너를 그 계절에 남겨둔 채 혼자 나아갈 자신이 없었다.




5.


밤공기가 서늘해졌음에도 나는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네 생각을 멈추려 눈을 감으면, 너는 더 선명해지기만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너를 지우려 애쓰기보단 그냥 눈을 감고 네 생각에 잠겨 들었다.



언젠가 잠 못 이루고 있는 내게 옆에 누워있던 기광이 물었다. 잠깐 잠이 들었던 모양인지 조금은 잠긴 목소리였다.


“요섭아, ‘별다줄’이 뭐의 줄임말인지 알아?”

“어‥. ‘별 걸 다 줄이네’ 아니었나?”

“아니야.”

“아니야? 그럼, 뭔데?”


“별을 다 따다 줄게.”


예상치 못한 기광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샜다.


“뻥 치지 마.”

“뻥 아니야.”

“그거 아니잖아.”

“맞거든요.”


기광은 짐짓 진지한 얼굴로 음절 하나하나에 악센트를 주어 대꾸했다. 나는 이 유치한 논쟁을 끝내기 위해 그만 넘어가 주기로 했다.


“그래, 그렇다 치고. 그건 갑자기 왜?”

“어….”


기광은 갑자기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말을 늘이다가 이내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요섭아, 별다줄….”

“뭐?”


그때, 네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허공으로 흩어질 것처럼 희미했다. 제대로 듣지 못해 다시 한번 말해주기를 청하자 기광은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별다줄이라고, 양요섭아.”

“어‥. 그러니까, 나한테 별을 따다 주겠다고?”


기광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음‥. 네가 잠을 못 자니까?”


기광은 정말로 하늘에 있는 별을 따기라도 하려는 듯 천장으로 손을 뻗었다.


“하늘에 있는 별을 따서 천장에 달아놓으면, 네가 그걸 세다가 잠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그날 밤은 꿈도 없이 깊고 단 잠이 들었다. 하지만 네가 없는 지금, 이 밤은 유난히도 길고 컴컴하다.


나는 괜히 닿지 않는 천장에 손을 뻗어보았다.




6.


간신히 얕은 잠이 들 때면 어김없이 너의 꿈을 꾸었다. 오늘도 언제 잠들었는지 너의 꿈을 꾸다가 잠에서 깼다. 시간을 가늠하려 흐린 눈을 비비자 얇은 커튼 위로 눈 그림자가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게 보였다. 가로등이 켜져 있는 것으로 봐선 아직 새벽인 모양이었다.


다시 잠을 청해도 될 시간이지만, 잠이 오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몸을 일으켜 발코니로 향했다. 문을 열고 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찬 공기가 온몸을 에워싸고 폐까지 들이닥쳤다. 길게 한숨을 내쉬니 허연 입김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다 금세 사라졌다.


그러다 문득 오늘 꾼 꿈에서 네가 했던 말이 떠올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이 안 올 때면 밤하늘의 별을 세어 봐.’

그 언젠가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여행을 갔을 때, 네가 밤하늘을 보며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잿빛 구름과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송이, 그리고 미처 구름에 가려지지 않은 이름 모를 별 하나뿐. 하나둘 세어나갈 만큼의 별은 보이지 않았다.


별이 안 보이는 날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는 알려주지 않았는데…. 내 물음에 답을 하려다 갑작스레 울리는 휴대폰에 전화를 받으러 들어가 버렸으니까. 그 뒤로는 물어볼 기회가 없었다.



“기광아,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짙은 구름 사이로 홀로 빛나는 별 하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러나 나의 물음은 당연하게도 그에 닿지 못하고 순식간에 고요 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정말 알 수가 없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또,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디인지도….



그저 흘러가는 계절 한가운데서 방향을 잃고 헤매는 미아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 비스트의 ‘Midnight (별 헤는 밤)’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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