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합작: Blog2
검색

YEY (예이)

  • 2018년 9월 9일
  • 4분 분량



w.물음표



빛 한 줄기 없는 방 안, 누군가의 손이 바닥을 더듬어댄다. 쥐이는 건, 흔하디흔한 라이터 대신 갑부터가 습기를 가득 머금은 성냥. 칙칙. 대충 그어본다. 몇 개비가 힘없이 대가리를 꺾이고 나서야 겨우 켜진 미세한 불꽃. 불이 꺼질 새라 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렇게 발갛게 타들어가는 두 개의 불꽃마냥, 어둠 속에서 드러난 얼굴은 하나가 아닌 둘.


연기를 내뿜는다. 하나가 쿨럭 대면 연기를 내뿜은 쪽이 나른한 웃음을 짓는다. 연기에 영향을 받는 건 드러난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는 사람 하나뿐이었다. 어지간히 넓은 방이어야 말이지. 성냥은 꺼진 지 오래. 담배도 끝에 재를 잔뜩 안고 있다. 볼이 홀쭉해지면, 하나 남은 불꽃마저 생명을 다한다. 다시 찾아온 암흑. 아랑곳하지 않고 두 입술은 정확히 맞닿는다.


오늘은 미래가 없는 이 두 인간이 뒤지기까지 하루 남은 날이었다.


-


"내가 왜 싫다는 거야?"

"야. 사람이 헤어질 수도 있는,"

"그러니까 그게 왜 나여야만 하냐고."


주저리를 들어주던 남자는 진절머리 난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조만간 고꾸라질 듯 아슬아슬한 자세. 독한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는 진상의 주인공은 대한민국에서 핫, 까진 아니고. 핫으로 부상하고 싶어 하는 용 의원의 둘째 아들이었다. 이 집엔 아들이 셋 있었는데, 정계에서 용 의원의 현 위치마냥 그는 집에서 어중간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사랑받지도, 버림받지도 않는 무관심을 받고 있는 둘째.


그러하니 다른 곳에서 애정을 갈구할 수밖에.


며칠 전, 서른 먹은 그의 첫 연애가 막을 내렸다. 꽤 많이 버텼다고 생각한다. 그가? 아니, 그의 애인이. 나이가 먹어가니 당연히 결혼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는데 국회의원 아들이라던 이 인간한테 떨어질 콩고물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미래가 아닌 현재에 집착했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바와 마찬가지로 제 인생에 보상처럼 돌아올 건 하나도 없다는 걸 그 스스로 체감하고 있는 게 눈에 뻔히 보였다.


그래서 애인은 그를 찼다.


그는 그의 애인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이해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비참하잖아. 지가 부족해서 차였다는 건데.


"보고 싶다."

"청승 그만 떨고."

"죽을까 그냥."

"아우, 진짜!"


이어지는 잔소리가 지겨워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구석에서 홀로 앉아있는 한 남자를 발견했다. 술이라곤 입에 대지도 못할 것 같이 생겨선 꽤나 들이킨 건지 반 정도가 빈 보틀. 간간히 드는 고개를 들어 제 잔을 채우는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핏기가 없는 얼굴, 텅 빈 눈동자, 한숨을 내뱉는 입술. 본능이 인지한다. 분명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일 거라고.


"너 가라."

"어?"

"나중에 연락할게."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걸음을 뗀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대강 손을 휘저으며 앞으로 걸어 나간다. 그를 바라보며 일렁이는 마음이 동정 때문인지, 공감 때문인지. 뭐가 됐든 그에게는 정신 차리라는 말 대신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같은 아픔, 같은 절망을 겪고 있는 사람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준형은 그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지금 기분이 어때요?"


취기가 아니었다면 용서받지 못할 질문이었다. 그러나 준형도, 그도 이미 한껏 취한 상태였기에 이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가 고개를 든다. 빛을 잃은 눈동자에 금세 슬픔이 차오른다.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면 일그러질수록, 한숨의 깊이가 짙어지면 짙어질수록 준형은 이상한 희열을 느꼈다.


"죽을 것 같아요."


정답.


"애인이 죽었거든요."


나보다 더 비참한 이유. 그제야 숨통이 트인다. 준형은 그의 어깨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그는 울지 않았다. 다만 늘어진 몸으로 준형에게 기댈 뿐이었다.


여름밤이 가진 어둠의 색이 짙어진다. 두 사람은 아무도 없는 공간으로 사라졌다.


-

기광이라고 했다. 사교계에서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그는 제안했다. 그렇게 죽고 싶다면 차라리 같이 죽는 게 어떠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잃은 채 불필요한 인생을 낭비하느니 화려하게 연소하는 게 답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아마 태어나, 이 집구석에 살아가면서 처음이었을 거다. 그렇게 속 시원하게 웃어본 건. 준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진 것도, 그래서 태울 것도 없는 인간이 나였다. 그래서 한 번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보잘것없는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창하게 벌어지는 불꽃놀이일 테니.



-


"셋이야."

"다섯, 하면 안 돼?"

"네 맘대로 해."


제일 좋아하던 넥타이 여러 개를 엮어 올가미를 만들었다. 매듭은 대부분 기광이 묶어주었지만 무튼. 높은 천장에 못을 박아 단단히 메니 그제야 실감이 났다. 오늘이구나. 아, 어쩌면 폭죽이 터지는 날은 오늘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싸늘해져 몸뚱이가 시체라고 불릴 즈음 발견될 수도 있으니까. 참, 타이밍은 세 번째를 피하고 싶었다. 셋이 싫었거든. 왜 혼자 받아도 부족할 사랑을 셋이 나눠야 하는지. 쓸데없는 순간에 떠오른 회상. 준형은 고개를 내저었다. 적어도 내 숨이 끊어지는 순간, 당신들 생각은 하지 않으리라. 그는 다짐했다.


의자에 서면 닿지 않아 적당한 높이의 사다리를 준비했다. 둘이 머물던 방 안은 사다리 두 개와 올가미 두 개가 나란히 서 두 사람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준형이 아껴두었던, 아주 오래된 와인을 열고 단 두 잔만 따라내었다.


"고마워."


죽음은 외롭지 않아도 된다는, 준형의 감사 인사. 기광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그들은 천천히 사다리에 발을 내디뎠다. 부드러운 올가미를 손에 쥐고, 그대로 원 안에 목을 밀어 넣었다. 기광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미묘한 희열이 차올랐다. 곧, 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


나는 혼자가 아니지.


"둘,"


이 세상은 나를 혼자로 만들었지.


"셋,"


그들을 벌할 수 있는 건 나야.


"넷,"


너만은 유일하게 고마운 존재로 남아.


"다섯."



사다리가 넘어지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허공에는 다리가 휘적거린다. 근데 왜, 두 쌍이 아니라 한 쌍뿐일까. 올가미 하나는 성인 남성이 목을 매달고 있는 데에도 끄떡없는데, 왜 하나는 그냥 풀어져 버린 걸까.


"네가 무슨 잘못이겠어. 부모 잘못 둔 것 말고는 없잖아, 그치."


준형은 숨이 막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가면서도 그저 웃었다. 이젠 놀랄 것도 없다. 사랑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다는걸, 결론은 결국 혼자란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무슨 기대를 했던 건지. 닳고 닳아버린 속은 긁어낼 것도 없어서.


"편하게 보내주고 싶은데 손 하나 댄 흔적 없이 완벽해야 하거든."


점점, 감겨오는 눈꺼풀.


"가서 내 애인이랑 같이 놀고 있어. 찢겨 죽든, 밟혀 죽든 그건 그때 할 거니까."


잘 가.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매달린 몸이 축 늘어졌다. 어김없이 기광은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처리 끝났습니다. 그의 짧은 한 마디.



용 의원이 보수파가 극도로 반대하는 정책에 이름 한 번 올리고자 동의하는 사인을 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틀이었다.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어쩔수 없지 뭐

last forever w.복숭아 원래 천재의 어깨에 얹힌 짐이란 무겁디무거운 법이다. 범인이 감내할 수 없는 무게를이고 있는 고독한 인재랄까, 뭐 그런 거 아니겠니. 아니 내가 뭐 원해서 그렇게 태어났나. 날 때부터 지능이 높았던걸, 본디...

 
 
 
Calling you

[형광/섭광] W.김괭킨 ‘우리 헤어지자.’ 어, 응. 처음 기광의 말을 듣고서는 역시 우리는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은 이별이라고 생각했다. 뒤돌아 걸어가는 기광이가 눈물을 흘려도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집에 와서도, 친구에게...

 
 
 

댓글


©2018 by 回顧.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